어느 베이징 표류자의 고백

신노동자의 시와 노래

베이징 피촌에 위치한 베이징노동자의집은 言值视频(‘옌쯔쓰핀’이란 이름의 비디오제작팀)과 함께 이곳 신노동자(농민공) 활동가들이 노래 혹은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짧은 영상을 제작했다. 이 시리즈는 “노동자의 시와 노래(劳动者之诗与歌)”라는 제목으로 매주 1편씩 공개됐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 매주 한 명의 노동자를 소개하고, 그의 삶 이야기도 듣고, 그가 직접 썼거나, 혹은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고 불러보는 짧은 영상을. 이런 시도는 매스미디어에 의해 괴물처럼 묘사되곤하는 민주노총을 우리 옆의 개개인의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기도 하고, 꼭 민주노총이 아니라도 집단적/계급적 정체성을 상실한 ‘노동자들’을 그게 일시적이고 한계적일지언정 집단적으로 호명할 수 있게 한다.

이 시리즈에 출연한 노동자들은 打工(다공; 일반적으로는 임시직 노동자를 일컫지만, 농민공을 칭하기도 한다.)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노래 혹은 시를 낭독한다.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영상은 십여편이 제작됐는데, 이는 그 중 하나다. 공부가 너무 지겨워서 잠시 딴짓을 해봤다.

샤오하이는 스물아홉 노동자로, 피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 폭스콘 공장에서 일했고, 광동성의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었다. 현재는 베이징에서 일하고 있으며, 피촌에서는 주로 연극 공연에 참여하고, 문학소조 세미나에도 참여한다. 지난 봄 나는 그를 딱 두 번 본 적있는데, 다른 중국 활동가의 소개로 인사만 했을 뿐 대화는 없었다. 전혀 친하지는 않다. (그땐 중국말을 정말 못 했다.)

주의 : 중국어 초보의 번역이므로 이 번역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 번역한 글은 신뢰는 하지마시고, 영상을 보고 그의 목소리와 표정을 보시길.

알림 : 아래 텍스트 중 검정색은 그의 인터뷰 중 말이고, 청록색 부분은 그가 낭송한 시의 일부분이다. 시 번역이 특히 부정확하다.

나는 이름이 있고, 성이 있는,
스물아홉살.
나는 즐거움이 있고, 슬픔이 있고,
애인은 없어.

15살 때쯤에 ‘打工(다공)’을 하러 떠났어요.
그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도 다 낯설었으니까요.
그냥… 큰 변화를 따라 휩쓸려서 ‘남하’했던 거죠.

그때는 아직 ‘남하’라는 말을 몰랐어요. ‘다공’이란 말은 알았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거잖아요.
그런 후에는 선전에서 동관으로 갔죠.
그리곤 광동에서 4년을 있었고요.
의류공장 예닐곱 군데에 있었고, 전자공장에서도 있었고, 그리고는 또 닝보에도 갔고, 쑤저우, 창쑤, 상하이, 정저우, 자싱에 갔고, 베이징까지 온 거죠.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15년이 지난 거예요.

위에서 ‘남하’란 중국 개혁개방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광동성 등 연안지역으로 농민공들이 이동했던 것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뤼엔따공장, 노키아공장, 타이라이공장에서 일했지. 선저우, 폭스콘에서도 일했고.”

도시는 점점 머무를 수 없는 곳이 되고 있어요. 왜냐하면 작업장에 있는 개인의 상태는 소외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인간이 찢겨 갈라지고 있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거든요.

폐허와 같고, 끝없는 나날들이 당신에게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하거든요. 이건 진짜 붕괴되는 느낌이고, 사실 매일 이미 붕괴되어버린 것 같죠.

“나는 쉰들러 레스토랑의 노동자. 나는 7936115156100350 사원번호 123”

말하자면 이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는 거죠.

저는 사실 매순간 매번 변해요. 그곳(컨베이어벨트)에 앉아 있으면서, 즉시 앞에 있는 물건을 다 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죠.

저는 항상 일종의 새로운 삶을 살아요.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었죠. 겪었던 어떤 날들을 생각해보면, 줄곧 이런 식이었죠. 왜냐하면 바꾸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애플을 생산하는 폭스콘의 중국공장

“나는 그들 입 속의 공상가. 현실적이지 않고, 문예청년이고,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했지. 구질구질한 가난뱅이에다가, 평범하고, 솔로이고, 곤궁하지.”

다들 이런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다들 정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지 않아요. 우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을 뿐인 거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요. 하지만 소리 내는 사람도 없어요. 다들 여전히 묵묵히 이런 삶을 살고 있는거죠.

“하지만 이것들 중에서 내 제품번호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무것도 없어.”

폭스콘 선전공장 기숙사 창문에 채워진 자살 방지 철망

사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모두 백만 번은 죽었어요. 사실 우리는 이미 죽었던 거죠. 비록 우리가 몸을 훌쩍 날리진 않았지만, 사실 저는 우리의 진정한 마음이 모두 몇 번이고 죽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루종일 우리는 작업장에 앉아 있는 자신이 아니예요. 그건 이미 죽어버렸죠. 근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삶이고, 기계와 같고, 폐허와 같은, 한도 끝도 없는 삶이예요. 우리의 청춘은 소모되고 있죠. 청춘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이미 당신이 거덜났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나는 지금 의연하게 비할 바 없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네게 말하려 한다. 나는 또한 절대적이고 고핍격우인 최상의 칭호를 남긴다.(?) 북표.”

매일 죽을 지경에 다다른 위기에서 배회하고 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죠.
그리곤 다행히도 시를 만났어요. 노래를 만났고요.
그리고는 진실한 영혼이 어떤 것인지 느꼈죠.
시에 대해 진실한 자신, 시에 대해 진실한 생명을 느꼈죠.

《흐르는 물 위의 청춘》
두 손은 점점 기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반복 반복 다시 또 반복
우리의 청춘
나사, 빨간 전원선에서
마이크로레지스터 안에서 소모되는
해가 갈수록 가라 앉는
침묵의 지독함

Post a Comment